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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량기업 소개/제조업 & 화학

포스코 입사를 위해 알아야 할 것들. 포스코 제철소 역사와 포스코홀딩스

by ghdzbql 2022. 1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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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코포항제철소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동촌동 5-14

포스코광양제철소 전라남도 광양시 폭포사랑길 20-26 제철소본부

한국철강-배당금
출처 : https://www.posco.co.kr/homepage/docs/kor6/jsp/company/posco/s91a1000081c.jsp

1. 포스코의 역사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서 제2차 계획 기간인 1968년 4월 정부의 건설 계획과 고 박태준 회장의 주도에 따라 자본금 4억 ( 정부 3억 원  대한중석 1억 원 )의 포항종합제철(주)로 출범했다.

 

 특이점으로 박태준 회장은 박정희 대통령을 도와 5.16 쿠데타에 가담했던 군인 출신이었으나, 국개재건최고회의 상공담당 최고위원을 지낸 뒤, 1967년 텅스텐 수출업체인 대한중석 사장을 역임했다가, 1968년 39명의 창업 인력과 함께 포항종합제철 초대 회장에 취임하게 된다.

 

 당시 대한중석은 한국에서 유일하게 외활을 벌어들이는 국영기업이었고, 그는 대한중석을 1년 만에 흑자 전환시켰다.

 

 대한민국 최초의 고로 ( 용광로 ) 업체로, 포항과 광양에 일관제철소를 갖추고 있다.

 

 포항은 1970년 4월 1일, 광양제철소는 1985년 3월 5일에 착공했는데,  참고로 포항제철소의 제1고로는 1973년 6월 9일 대한민국에 최초의 쇳물을 토해냈다.

 

 당초 예정보다 1개월이나 일정을 앞당겼고, 경부고속도로 건설비용의 3배에 이르는 1,205억 원의 자금이 들어갔다.

 

 1기 사업은 조강 연산 103만 톤 규모였는데 대일청구권자금, 일본수출입은행 상업차관 등 외자와 230억 원의 내자 등 총 600억여 원을 들여 1973년 7월 3일 포항제철소 1기 설비를 준공한 이후 지속적으로 설비를 늘렸다.

 

 2기 사업은 중화학공업의 중점 육성, 철비산업 설비구조 개선, 철강재 공급확대, 국제경쟁력 강화의 필요성이 대두돼 1971년 2월 제3차 5개년 계획 중 최우선사업으로 선정됐다.

 

 1976년 5월 2기 설비 준공, 때마침 국내 철강재 수요는 8년 동안 8배 성장을 보여 곧바로 3기, 4기 설비에 착수했다.

 

 그렇게 4기 사업으로 조강연산 850만 톤 규모로 확장해 국내 철강재 자급도를 신장시키고, 질적으로 설비의 신예 / 합리 / 대형화 및 기술의 고도화를 통해 기업 체질을 강화하고 국제경쟁력 제고에 집중했다.

 

 4기 공사는 1981년 2월, 아울러 정부로부터 제2제철소 실수요자로 지정받아 전라남도 광양만을 매립해 조강연산 820만 톤의 광양제철소를 완공함으로써 대한민국 제철사에 역사를 창조함과 동시에 세계 철강사의 신기원을 이룩한다.

 

 사실 현대제철과 치열한 경합 끝에 포항제철이 제2제철소 사업권을 얻게 됐고, 광양만은 수심이 깊고 조수간만의 차도 크지 않을 뿐더러 전라도에 있어 균형 발전 취지에 맞아 높은 점수가 매겨졌다.

 

 광양제철소의 경우 1982년부터 15,077,448m²의 바다를 매립해 불과 10년 만에 여의도 5배 크기의 세계에서 가장 큰 제철소로 성장하는 대역사의 과정을 볼 수 있는 장소다. ( 전체 부지 2,080만m², 630만 평, 잦은 간척 사업으로 더 넓어졌다. )

 

 첨언으로 포항제철소는 주조부터 압연까지의 공정이 U자 형태로 돌아나오게 되어 있지만, 광양제철소는 더 뒤에 지어졌고 부지도 훨신 넓어 전체 공정이 일자형으로 설계됐다.

 

 포스코 광양제철소 제강부가 누적 조강생산량 1억 톤을 달성한 건 1998년 3월 5일로 87년 이후 11년 소요,

 

 2억 톤 달성 시기는 2005년 4월 29일로 처음보다 7년이 단축됐으며, 제강공장에서 연주공장으로 이어지는 전로 -> 정련 -> 연주를 1:1:1로 최적의 생산 프로세스를 구축함으로써 양적 성장은 품질 저하를 야기할 수 있다는 인식을 부수고 두 가지 모두를 잡을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게다가 2012년 3월 도금제품 총 생산량 5,000만 톤을 넘어섰는데, 본 기록을 세운 단일 제철소는 일본 내 3곳에 불과했고, 광양제철소는 그들보다 10년이나 단축시켰다.

 

 

 1987년 정부의 대기업 국민주시책에 의해 1988년 4월 주식 상장,

 

 1988년 7월 광양제철소 2기 설비 종합 준공,  1990년 12월 3기, 1992년 10월 4기까지 설비 종합 준공을 완료한다.

 

 1990년대는 정부의 세계화 정책과 함께 급속하게 개방이 이행됐고, 세계적으로는 철강산업의 성장세가 크게 둔화돼 포스코는 해외로 눈을 돌렸다.

 

 앞서 1986년 4월 1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피츠버그시에 US스틸과 합작 법인으로 설립한 냉연 단순압연 법인 UPI ( USS-POSCO Industires )를 필두로,

 

 1992년 중국과의 수교를 계기로 중국 시장 개척을 위해 화베이, 화둥, 화난 세 곳에 생산과 판매 거점을 구축했고, 텐진에 포철천진강재가공유한공사 ( 현 POSCO-CTPC )를 설립한다.

 

 1996년에는 광둥성 순더에 순덕포항도신강판유한공사,

 

 1997년 양쯔강 하류 장자강에 장가항포항불수강유한공사를 세워 스테인리스 냉연 공장을 가동시킨다.

 

 추가적으로 선진기술과 설비 도입, 제철소 산하 포항공과대학 및 산업과학기술연구소 등에서 개발한 고유 기술로 개발도상국에 설비, 기술을 수출할 수 있는 기틀까지 마련했다.

 

 산학연 협력체제를 통한 연구 목적으로 1994년 포스코경영연구소, 포스코기술연구소, 포스코개발기술연구소가 등장한다.

포스코케미칼-음극재 양극재

 

 

2. 포스코의 도약 과정

 1993년 김영삼 정부의 세무조사로 박태준 회장이 일본으로 떠나는 등 체제가 흔들리면서 부진에 빠질 뻔했지만, 1997년경 재보선으로 박태준 회장이 복귀하고, 정권교체로 인해 기업은 다시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2009년부터 룩셈부르크의 아르셀로미탈, 중국 허베이강철그룹, 바오강그룹에 이어 세계 4위의 연간 조강 생산능력을 자랑했고,

 

 2010년 1월 13일 15,613t을 생산해 세계 최초로 쇳물 15,000t을 넘어서는 기록도 달성했으며, 광양제철소는 단일 제철소 기준으로 연간 조강 생산량 부문에서 세계 최대 규모이다.

 

 2011년에는 세계 최초의 연연속 열연공장을 보유하게 돼 과거보다 30% 정도 더 얇은 박판을 생산할 수 있게 됐고,

 

 같은 해 6월 세계 최초 연산 200만 톤의 파이넥스를 착공했는데, 200만 톤 규모의 파이넥스 비용광로 쇳물 제조법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였다.

 

 

[ * 파이넥스 공법 ( FINEX, 직접제강법 )은 포스코와 지멘스 VAI가 개발했다.

 

 기존 용광로 공법과 달리 가루형태의 철광석과 일반 유연탄을 사용해 쇳물을 양산하는 기술로 원료 전처리 공정이 생략된다는 특징 덕분에 투자비와 생산원가를 15%나 낮춤과 동시에 온실가스 배출량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본 공법은 대한민국 국가핵심기술로 지정됐다. ]

 

 

 여기에 더해 기존 4단 유동환원로 ( 가루 철광석을 순수한 철성분으로 바꿔주는 설비 )를 3단으로 간소화하고, 컨베이어 벨트를 이용해 이송하던 분철광석을 자체 발생하는 가스를 이용해 운송 투입하는 차별화된 기술로 생산량을 33% 상승시켰다.

 

 주요 생산 제품은 열연 / 선재 / 용융아연 / 전기아연 / STS ( 스테인리스스틸 ) / 전기강판 / 냉연 / 후판 / 티타늄 / 마그네슘 등이다.

 

 

 철강제조라는 사업 목적 외에도

 

1984년 항만하역업, 운수업, 창고업,

 

 1994년 부동산 임대업과 유통업,

 

 1995년 9월 포스코센터 개관, 베트남 Vps 준공,

 

 1995년 도시가스사업과 발전사업, 11월 포항제철소신제선공장 준공, 12월 환경방침 제정,

 

 2001년 지역난방사업,

 

 2002년 광물의 국내외 해상수송 및 가공 판매,

 

 2006년 교육서비스업,

 

 2007년 비철금속 제조, 가공, 판매 및 자원개발사업 등을 추구한다.

 

 아울러 1994년 뉴욕증권시장, 1995년 런던증권시장, 2005년 도쿄증권시장에 상장했고,

 

 국영기업에서 출발한 포스코는 1997년 사외이사제도 도입에 더해, 2000년 10월 산업은행이 보유하던 지분 36%를 전량 매각돼 민영화됐다.

 

 이 배경에는 사실 1997년 IMF 외환위기가 있었는데, 정부는 포스코에 대한 정부의 보유지분을 매각해 국민경제의 구조조정 재원으로 활용하고자 포스코를 최우선 민영화 대상 기업으로 선정했다.

 

 그렇게  2002년 3월 15일 "포스코 ( POSCO, Pohang Iron and Steel Co., Ltd )"로 사명을 변경했다.

 

 

 기간산업이란 한 국가업의 기초가 되는 산업을 의미하는데, 주로 전력, 철강, 가스, 석유 등 다른 산업의 재료를 만드는 분야를 말한다.

 

 포스코는 주요 수출품인 자동차, 선박 등을 만드는 데 꼭 필요한 철강을 만들고 있어 기간산업의 중심이라 할 수 있으며, 실제로 전 세계 자동차 10대 중 1대는 포스코의 자동차강판이 사용됐을 정도다.

 

 철강산업은 자동차, 조선, 가전, 건설 산업에 기초 원자재를 공급하며, 1970년대 이후 대한민국 경제발전에서 중추적 역할을 해왔다.

 

 앞에서 살펴본 노력들을 토대로 포스코는 다우존스 지속가능경영지수 2017년 평가에서 세계 철강업계 최초로 13년 연속 우수기업 선정, WSD ( World Steel Dynamics )가 발표한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철강사'에 9년 연속 1위에 올랐다.

 

* 비한인드 스토리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1968년 4월 1일 설립자본금 4억 원으로 설립된 포항종합제철 주식회는 정상화되기까지 많은 난관들이 존재했다.

 

 애초에 제철소 건설을 목적으로 주식을 공모했지만 목표액 33억 원의 0.4%인 1,300만 원만 모였다.

 

 제철소를 건설하기 위한 자금은 KISA ( 5개국 8개 사의 연합체 대한국제제철차관단, Korea International Steel Associates )에 기대하고 있으나 제대로 된 지원이 없었고, 당시 세계은행의 한국 담당을 맡았던 영국인 자페는 포항종합제철이 경제성이 없다고 판단해 이것이 큰 약점으로 반영됐다.

 

 게다가 부지 선정에서도 애를 먹었다.

 

 초기 후보지는 충남 서천 / 경남 울산 / 삼천포 3곳이었고, 유력인사들의 고향 챙기기가 반영돼 있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큰 돈이 들어가는 사업이었기에 포항에 대한 설명을 들은 이후 경제동향 보고회 자리에서 곧바로 포항을 낙점했다.

 

 1969년 1월 KISA의 모기업이자 미국 제철소 건설 기술 용역 회사인 코퍼스 ( Koppers Co. Inc )의 포이 ( F. Foy ) 회장을 설득하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한 박태준 회장이었지만 사업적인 면에서 완고했던 포이였기에 실패했고, 그는 자금 동원 방법으로 대일 청구권을 떠올렸다.

 

 물론 돈의 용처는 정해져 있었으나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사항이었고, 일본 정부와의 합의 끝에 8천 만 달러를 제철소 설립에 활용할 수 있었다.

 

 일본 입장에서도 미국 주도의 KISA가 붕괴되면서 자신들이 주도권을 잡을 수 있으리라 보았고, 제철소로 인한 환경공해 이슈가 겹치면서 철강공업설비를 판매할 크고 안정적이며 중장기적인 프로젝트가 필요했다.

 

 1970년 첫 삽을 뜰 때 박태준 회장은 "실패하면 역사와 국민 앞에 씻을 수 없는 죄를 짓는 것이다. 그때는 우리 모두 우향우 해 영일만에 몸을 던져야 할 것."이라 공표했다.

 

 왜냐하면 한일협정으로 생간 대일 청구권 자금을 기반으로 세워졌기에 박태준 회장은 포스코가 선조들의 피로 만들어진 회사라고 말해왔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여곡절 끝에 모습을 드러낸 포항제철은 세계 철강 역사에서 제철소를 가동한 첫해부터 이익을 낸 유일한 기업으로 남았다.

 

 1978년 중국의 최고 실세 덩샤오핑은 신일본제철을 방문해 "중국에 포항제철 같은 제철소를 지어달라."고 요청했는데,

 

 이나야마 신일본제철 회장은 "제철소는 돈과 기술로만 짓는 게 아니라 사람이 짓습니다. 박태준 같은 사람이 없으면 포항제처로가 같은 제철소는 지을 수 없습니다. 포항제철은 기적입니다."라고 정중하게 거절한 일화가 있습니다.

 

 산업화 초입에서 철강의 자체 생산은 필수적이었기에 정부 역시 1968년부터 1992년까지 상당한 현금출자, 현물출자를 단행했고, 지금의 포스코가 있기까지 큰 공헌을 했다.

 

 또한 박태준 회장이 정치계에 들어서는 대신 포스코에 대해서는 간섭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전두환 대통령에게 받아내기도 했다.

 

 

 그 중에서도 2003년 부임한 이구택 회장은 4년간 매출액 71%, 영업이익 112% 상승, 주가도 취임 때 99,000원 대에서 2007년 30만 원을 훌쩍 넘겼다.

 

 그리고 2006년부터 철광석 산지인 인도에 전례 없던 국외 제철소 건립까지 추진해 세계 속의 포스코로 발돋움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07년에는 아르셀로 미탈 그룹이 적대적 인수합병을 시도했는데, 포스코가 경영권 방어를 위해 약 1조 원에 달하는 돈으로 자사주를 매입했다.

 

 다행히 그들의 시도는 실패했는데, 당시 포스코 합병 시도가 가능했던 이유는 외국인 지분이 60%를 상회했기 때문이라 판단해 2008년 국민은행과 3천 억 원에 달하는 주식을 맞교환했다.

 

 또 한 가지 특이점으로, 포스코 창립 당시 정보를 통해 유용한 자금 1억 1,948만 달러는 포스코가 민영화된 이후 3조 8,899억 원이라는 액수로 정부에 반환했는데, 문제는 이 4조 원에 가까운 금액이 어디에 어떻게 쓰였는지 사용처가 불분명하다고 한다.

 

 그리고 2020년 기준 대일청구권 자금이 이용된 기업, 은행, 공공기관들 중 도의적으로 기금을 출연한 곳은 포스코가 유일하다고 한다.

현대비앤지스틸-입사

 

 

3. 포스코홀딩스의 등장

 2021년 12월 10일 포스코는 이사회에서 지주회사 체제로의 전환을 의결했다.

 

 전환 사유는 "지속 성장과 기업 가치 제고를 위한 다양한 방안을 모색해왔는데, 가장 성공적이고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그룹의 미래 신사업을 발구하고, 사업 및 투자 관리를 전담하는 지수회사 체제로의 전환이 필수적이라 판단했다."라고 밝혔다.

 

 존속 지주회사 포스코홀딩스를 상장사로 유지, 신설 철강 사업회사 포스코로 물적 분할하는데, 포스코홀딩스가 사업회사 포스코 지분을 100% 보유하지만, 사업회사 포스코는 비상장사로 두는 구조다.

 

 이어 2022년 1월 28일 임시주주총회에서 철강 사업부 분활 및 지주회사 전환 안건이 통과돼 3월 2일 포스코홀딩스 상장 지주회사로 다시 출범했다.

 

 포스코홀딩스는 포스코그룹 계열사를 지배 및 관리하면서 수소, 전기차 배터리 등 신사업 투자와 발굴 등의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다만 포스코홀딩스의 법적 본사를 서울로 두기로 결정해 포항시 지역사회가 크게 반발해 정치적인 문제로까지 번지기도 했다.

 

 

 논외로 포스코교육재단은 산하에 4개 고등학교, 2개 중학교, 4개 초등학교에 더해 유치원, 어린이집을 운영하고 있는데, 직원들이 자녀 교육에 신경쓰지 않게 해 마음 편히 일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자 설립했다.

 

 포항공과대학교, 포항산업과학연구원, 포항가속기연구소 등 고등교육과 연구 분야까지 포스코 발전에 혁신적인 역할을 했고, 2015년에는 송도국제도시에 인천포스코고등학교를 개교하기도 했다.

 

 포항공과대학교 ( POSTECH )는 박태준 회장의 이공계 연구중심대학 구상 계획에 의해 설립됐고, 국내를 넘어 세계 대학들과 경쟁하고 있다.

 

 이것이 가능했던 원인은 포항제철 건립 초창기인 1960년대부터 직원 주택과 학교를 건설하기 시작했는데, 당시까지만 해도 돈을 낭비한다고 엄청난 비난을 받았지만 엄청나게 진보적인 사고였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만큼 동시대에 지어진 다른 주택단지들과 비교해 녹지비율과 체육시설이 굉장히 잘 갖춰져 있으며, 자녀 학자금 지원에 대해서도 저출산 해결을 위해 한도 내에서 실비로 자녀 수 제한 없이 지원하고 있다.

 

* 포스코광양제철소

- 2019년 12월 24일 포스코 광양제철소 내부 폐열 자가발전시설의 가동을 시험하던 중 돌연 폭발해 5명이 부상을 입는 등 인명피해가 발생했고, 시설 전체가 형체를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완전히 파괴됐다.

 

 폭발음은 직선거리로 10km가 넘게 떨어진 여수시에서도 확인됐고, 1m 크기의 쇳조각이 이순신대교로 날아가 다리 난간을 찌그러트렸다.

 

 

- 2020년 11월 24일 16시 2분 폭발사고로 근로자 3명이 사망했다.

 

 화재는 20여분 만에 진화됐는데, 사고 원인은 1고로 부대설비인 산소 배관 설비에서 필요한 산소를 공급하기 위해 배관을 열던 중 균열이 생겨 강한 고압 산소가 새면서 화재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포스코 부지 내에서 속도위반, 안전보호구 미착용 등 안전수칙 위반으로 적발되면 협력사의 경우 그 회사의 대표이사가 출근시간에 나와 전 직원들을 상대로 사과와 안전 다짐을 하기도 하고, 부지 내에서 3번 흡연이 적발되면 이유를 불문하고 포스코 출입문을 영구적으로 통과할 수 없는 등 강도가 강한 통제가 많다.

 

 내부적으로 안전에 굉장히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현대제철과 더불어 매년 중대 산업재해가 발생하는 것을 고려하면 제철소 현장이 상당히 위험하고, 안전에 대한 태도가 어째서 강한지 알 수 있다.

 

 

- 포스코는 2022년 11월 3일 전라남도 광양시 태인동에 위치한 광양국가산업단지에서 포스코 친환경 풀필먼트 센터 착공식을 개최했다고 밝혔다.

 

 당일 포스코 이주태 구매투자본부장은 "현재 과밀화되고 분산돼 있는 물류창고를 통합하고, 스마트 기술을 활용해 자재 주문부터 재고관리 및 신속 배송까지 토탈 서비스를 제공하는 물류 프로세스를 구축해 조업경쟁력을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먼저 포스코는 광양제철소 내 공장별로 분산 운영되고 있는 300여 개 자재창고를 하나로 통합한다.

 

 동일 자재들이 창고별로 개별 보관됨에 따라 중복 보유로 인해 재고 비용이 증가하는 비효율을 개선하고, 관리 미흡으로 인한 자재 열화를 방지해 자재 건전성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공간 협소로 발발할 수 있는 작업자 안전 문제를 개선하고, 입불출 관리가 한 곳으로 통합돼 분산 관리로 인해 야기될 수 있는 윤리리스크도 차단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포스코는 사물인터넷, 인공지능 등 4차산업혁명의 핵심기술을 도입해 대한민국 최초의 등대공장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런 기술적 강점이 자재조달에도 풀필먼트 개념을 적용해 스마트한 자재관리 서비스를 구현할 계획이다.

 

 

- 광양제철소는 '포스코 1% 나눔재단' 지원을 받아 단순 일자리 중심의 시니어 노동 현황에 다양성을 제시하는 어르신 고품격 일자리 창출 교육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2022년 11월 10일 < 광양제철소가 함께하는 시니어 일자리 창출형 인재양성 교육사업 > 발대식이 열렸고, 어르신들이 지역사회에서 품격있는 일자리에 참여할 수 있도록 돕고자 기획됐다.

 

 올해로 3년차를 맞이한 본 프로그램은 239회에 걸쳐 진행돼 총 161명이 취업 연계에 성공했다.

 

 

 이어 포스코 광양제철소 프렌즈봉사단은 11월 9일 일손 부족 현상을 겪고 있는 자매마을 광양시 진상면 섬거마을을 찾아 농번기 일손돕기 봉사활동을 펼쳤다.

 

 봉사단원 120여 명은 총 16t의 감과 키위를 수확했고, 400여 명의 제철소 직원으로 구성된 프렌즈봉사단은 2019년부터 지역 농산물 나눔 프로젝트를 통해 지역 농산물을 구매하고, 도움이 필요한 가정에 직접 담근 김치를 전달하는 등 여러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미 광양제철소 직원들은 2014년부터 각종 봉사단을 창단해 지역사회 및 이웃과 나눔을 실천해 왔고, 총 46개 봉사단이 재능과 유익한 사고로 지역사회를 돕고 있다.

 

 

- 2022년 11월 2일 포스코포항제철소와 광양제철소는 리스폰서블스틸 ( ResponsibleSteel ) 사업장 인증을 획득했다.

 

 리스폰서블스틸은 철강 산업의 글로벌 환경, 사회 지배구조 ( ESG ) 표준을 개발하고, 인증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비영리기구다.

 

 2016년 설립돼 130여 개 기업과 기관들이 소속돼 있는데, 포항과 광양제철소는 9개월 동안 370개 항목에 이르는 심사와 실사를 거쳐 ESG 경영 활동과 관리 체계의 우수성을 인정받았다.

 

 아시아 철강사 중 본 인증을 받은 것은 포스코가 처음이다.

 

 

- 포스코 광양제철소는 2022년 10월 26일 세계 최초로 에너지 분야 전문 인증기관인 DNV로부터 풍력용 후판 제품 생산공장으로 인정받았다.

 

 DNV는 약 3개월간 광양제철소 후판 공장의 품질관리 시스템과 생산 공정, 설비, 제품 테스트 설비와 관련 인증 등을 실사 평가해 신재생에너지용 강재 공장으로 승인했다.

 

 DNV는 에너지, 오일가스, 조선해양 산업을 중심으로 소재부터 설계까지 안전성을 기술적으로 평가, 인증하는 세계 최대 에너지 분야 인증기관이다.

 

 특히 세계 최초로 균일 항복강도 ( YP )를 구현한 EN-S355 규격의 후판 제품도 풍력발전기 소재로 인증했다.

 

 풍력타워 터빈 설계사들은 유럽 표준 규격에 명시된 두께별 항복강도로 설계할 수밖에 없는 제약이 있었는데, 이번 인증을 계기로 균일한 항복강도 특성을 가진 후판 제품을 구조 설계에 반영할 수 있게 됐다.

 

 

- 2022년 10월27일 포스코는 삼성전자와 반도체 핵심 소재인 제논(Xe) 가스 국산화를 추진한다고 공표했다.

 

 제논 가스는 3차원 V낸드 등 첨단 반도체 생산에 필수적으로 사용되는 희귀가스 중 하나다.

 

 공기 중에 극미량이 포함돼 있어 대형 공기분리장치를 보유한 제철소에서 주로 생산되는데, 현재까지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양사는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2024년부터 제논 가스를 공급받기로 했다.

 

 삼성전자는 글로벌 공급망 이슈가 심화되고 있는 여건에서 본 협력으로 반도체 핵심소재의 국산화와 공급망 다변화를 추진할 수 있게 됐다.

 

 포스코는 2023년까지 광양제철소 공기분리장치에서 제논 가스를 추출하는 설비 기술 개발을 추진하고, 2024년 생산, 2027년 생산량 확대를 계획 중이다.

앤드류 카네기-강철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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