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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리원 스토리/생활 정보

퓰리처상의 기원과 조지프 퓰리처의 삶 Pulitzer Prize & Joseph Pulizer

by ghdzbql 2021. 6.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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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The_Pulitzer_prizes.jpg

[ 뉴욕타임스의 역사와 현재 ]

https://1wndlf.tistory.com/214

 

 

 

퓰리처상의 의미와 조셉 퓰리처의 인생

1. 퓰리처상은 무엇일까? Pulitzer Prize

 

  우리는 종종 어떤 문학 작품이

'퓰리처상 수상작 Pulitzer Prize'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엄청난 명성과 판매고를

올리는 현상을 목격할 수 있습니다.

 

  제가 작성했던 포스팅 중에서도

코맥 매카시의 < 더 로드 > /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 노인과 바다 > 등

퓰리처상을 수상한 작품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궁금했습니다.

퓰리처상은 무엇이고, 언제부터 생겼으며,

어떻게 명성을 얻게 됐을까?

 

  고민할 필요 없이

지금 바로 알아보겠습니다.

 

 

  퓰리처상은 언론인들 중

가장 존경을 받았던 Joseph Pulizer

조셉 퓰리처가 세상을 떠나기 전

유언대로 유산 50만 달러를 기금으로

시작해 1917년 만들어졌습니다.

 

  Columbia University 컬럼비아대학교

( 미국 동부 8개 명문 사립대학

아이비리그 중 하나 )

언론대학원에 있는 퓰리처상

선정위원회가 매년 4월 수상자를 발표,

5월에 학교에서 시상식을 개최할 만큼

미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보도 / 문학 / 음악상입니다.

 

  각 분야에서 그해 가장 특출난

업적을 달성하거나 기여한 사람들이

추천을 받아 수상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는 영광을 얻게 됩니다.

 

 

  언론 분야에서는 총 15개

 

- 공공서비스 Public service

 

- 특종기사보도

 Breaking news reporting

 

- 추적보도 Investigative reporting

 

- 해설보도 Explanatory reporting

 

- 지역보도 Local reporting

 

- 국내보도 National reporting

 

- 국제보도 International reporting

 

- 특집기사 Feature writing

 

- 논평 Commentary

 

- 비평 Criticism

 

- 사설 Editorial writing

 

- 만평 Editorial cartooning

 

- 특종사진

 Breaking news photography

 

- 특집사진

 Freature photography

 

- 오디오보도

 Audio reporting

 

 

  그리고 문학 / 드라마 / 음악

부문에서 총 7개 퓰리처상을 수여합니다.

 

- 소설 Fiction

 

- 극본 Drama

 

- 역사 History

 

- 시 Poetry

 

- 음악 Music

 

- 전기와 자서전

  Biography or autobiography

 

- 논픽션 General non-fiction

 

 

  각 수상자들에게는 $15,000의

상금과 메달을 부상으로 줍니다.

 

  그런데 퓰리처상은

누구나 받을 수 있는 상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언론 분야에서는

미국 신문사에서 활약하고 있는

사람이어야 하며,

문학 / 드라마 / 음악 분야에서도

반드시 미국 시민이어야 한다는

조건이 있기 때문입니다.

 

  언론계에서 노벨상의 위상과

같다고 할 수 있을 만큼 '기자들의 노벨상',

'언론인이 성취할 수 있는 가장 큰 영광'으로

꼽히는데,

 

  수상 범위가 오로지 미국이라는 점이

의외이면서도 아쉬운 점이기도 합니다.

 

 

  또 한 가지 특이점으로는

온라인 사용이 대중화되면서

1999년부터는 공공서비스 부문에서

온라인 작업이 인정됐고,

 

  언론 분야에서는 2006년부터 허가됐습니다.

 

  현재는 사진부문을 제외하고 모든 분야에서

온라인 콘텐츠가 포함돼 있습니다.

 

[ 월스트리트 저널의 역사와 명성

Wall Street Journal ]
https://1wndlf.tistory.com/215

 

 

 

2. 조셉 퓰리처 Joseph Pulizer

  ( 1847.04.10 ~ 1911.10.29 )

출처 : Joseph Pulitzer, Pres. Press Publishing Co. - New York Public Library's Public Domain Image (getarchive.net)

  조지프 퓰리처의 아버지는

헝가리 유대계 출신으로 곡물상을

운영했는데 각 과목마다 과외 교사를

배정할 만큼 부유하고 교육에

열성적이었습니다.

 

  덕분에 퓰리처는 헝가리어, 독일어,

프랑스에도 능통하고 교양의 수준도

깊은 저널리스트로 성장합니다.

 

  하지만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가세는 기울어졌고, 퓰리처는 돈을 벌고자

직업 군인을 자청했으나 마른 몸과

좋지 않은 시력으로 거절당하게 됩니다.

 

  돌고 돌아 퓰리처는 17살에

유럽을 떠나 미국으로까지 오게 됐고,

남북 전쟁이 끝나갈 무렵

북군 군인 소속이 되기도 했으나,

 

  종전 후에도 영어를 하지 못해

닥치는 대로 일을 했어도

하층 이민자 계급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루이지애나 사탕수수 농장에서

( Louisiana 미국 중남부 멕시코만 )

사기꾼을 만나 모은 돈을 다 잃었고,

 

  사기꾼을 잡고 자신과 같은 피해자가

나와서는 안된다는 일념으로

당시 이민자들이 많았던

세인트루이스의 독일어로 발행되던 신문

( Saint Louis 미국 미주리주 )

< 웨스틀리체 포스트 >에

사기당한 사연을 올렸습니다.

 

  뛰어난 문장력을 바탕으로 한

실감 난 이야기를 < 웨스틀리체 포스트 >

편집자가 본 뒤

'셰익스피어가 쓴 것 같다'라고 생각해

퓰리처를 기자로 채용합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았기에 기자로서

퓰리처의 역량은 빛을 보았습니다.

 

  자연히 영어 실력도 일취월장해

변호사 자격증까지 취득했지만

영어 발음까지 마스터하지 못한 그에게

의뢰를 맡기는 사람은 없었고,

결국 기자일에 몰두하게 됩니다.

 

  퓰리처는 정치에도 손을 뻗어 잠깐

공화당 당원으로 주 대표가 되기도 했지만,

당의 부패함으로 민주당으로 전향해

일생을 민주당 당원으로 살아갑니다.

 

  이때 1869년 미주리 주 의원을

역임하기도 했습니다.

 

  그 사이 자사주를 사고, 파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재산을 불린 퓰리처는

기자가 된 지 10년 만에

< 세인트루이스 디스패치 >와

< 세인트루이스 포스트 >를 사들여

합병시킨 뒤 < 포스트 디스패치 >를

창간해 뉴욕으로까지 진출합니다.

 

  또한 매년 4만 달러 적자를 기록하던

< 뉴욕월드 Newyork World >를

35만 달러에 매입해 신문을 단지

정부의 정책을 전하는 매체가 아닌

사람들이 흥미로워하고 선정적인 내용들을

실어 '재미없는 신문은 죄악'이라

청명함으로써 기존에 신문들이 갖고 있던

따분한 고정관념을 부셔버립니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여성들을 위한

정보, 스포츠 뉴스, 여성기자 채용,

만화 삽화 추가, 일요판 발행 등

신문에 상업성과 오락성을 동시에 심어

신문 구성과 기획에

전혀 다른 기준점을 창시했습니다.

 

  퓰리처의 새로운 시도로

< 뉴욕월드 >는 미국에서 최고의

발행부수를 기록한 신문이 됐고,

퓰리처는 큰 성공을 거둡니다.

 

[ 워싱턴포스트지 역사와

닉슨 대통령의 워터게이트 사건 ]

https://1wndlf.tistory.com/217

 

 

 

 

  20세기 초에는 신문사 간 경쟁이

매우 치열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퓰리처가 이처럼 활발하게

활동하던 시절 언론 재벌 2세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

William Randolph Hearst도

< 뉴욕저널 >을 발행해 퓰리처의

< 뉴욕월드 >를 그대로 모방했고,

 

  독자들의 시선을 끌고자

보다 자극적으로 취재하고 보도하는

경향이 강화됨과 동시에

과열된 스카우트 경쟁이 벌어졌습니다.

 

  선정적 신문보도를 뜻하는

황색언론 Yellow Journalism은

퓰리처가 미국 최고의 신문으로

일군 < 뉴욕월드 Newyork World >지에서

싣는 만화의 주인공 노란 아이

the yellow kid에서 유래됐습니다.

 

  바로 여기서 영예로운 상인

퓰리처상을 만든 사람임과 동시에

황색언론을 대표하는 사람이기도 한

조지프 퓰리처의 정반대 되는 이미지가

탄생했습니다.

 

  일각에서는 두 사람의 과한 경쟁이

사람들의 군국주의를 고취시켰고,

그 탓에 1898년 미국-스페인 전쟁의

원인을 제공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반면, 위와 같은 언론사들의

적극적인 개입은 권력과 부에

굴하지 않고 자신들의 독립성과

힘을 키우게 된 원동력이 됐습니다.

 

  단적인 예로 퓰리처는

부패한 보험회사 실태 고발,

뉴욕 시의원 뇌물 사건 고발,

기업들 간의 유착관계를 파헤쳤고,

 

  사회 하층민들을 위한 개혁운동 주도,

자유의 여신상 기금 모집 등

이 모든 일을 퓰리처는 신문을 통해

시민들과 소통하며 해냈습니다.

 

  왕성한 활동 뒤에 퓰리처의 건강은

극심히 악화됐고, 그는 자신이 황색언론의

대명사가 된 것에 가슴 아파했습니다.

 

  오랜 고민 끝에 그는 작고 전

언론의 역기능을 방지하고

언론인의 사명감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고등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컬럼비아 대학교에 문의했고,

 

  컬럼비아 대학교에 기금을 위탁해

Columbia University

한 해 동안 가장 훌륭한 기사를 작성한

언론인에게 주는 상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여기에 더해 컬럼비아 대학교

언론 대학원을 개설했고,

 

  1917년부터

퓰리처상을 수여하게 됐습니다.

 

  퓰리처는 살아생전 요트를

가장 좋아했다고 전해지며,

그래서인지 요트 위에서

파란만장했던 삶을 마감합니다.

 

[ 어니스트 헤밍웨이 작품과 삶

그리고 노인과 바다 ]

https://1wndlf.tistory.com/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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