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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리원의 서재/신문에서 얻은 지혜

알리바바 창업주 마윈의 삶과 성공 비결 馬雲 Ma Yun Jack Ma

by ghdzbql 2021. 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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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s://pixabay.com/ko/illustrations/잭-엄마-남자-초상화-마윤-5831277/

[ 귀여운 여인 안톤 체호프의 삶과 작품,

책 바보 빅터 후기. Anton Pavlovich Chekhov ]
https://1wndlf.tistory.com/280

 

 

 

내 하이라이트는 아직 오지 않았다.

- "남들의 하이라이트와

나의 비하인드를 비교하지 마."

 

  인간은 누구나 타인과

비교하려는 성향이 있다.

 

  남이 가지고 있는 것을

자기가 얼마나 갖지 못했느냐를

비참해한다.

 

  하지만 남과 비교하면서

더 잘하려고 할 필요가 없다.

 

  자기 자신보다 잘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가난하고 어려웠던 이들의

비하인드 스토리는 까맣게 잊고,

 

  잘 나가고 성공한 이들의 하이라이트만

기억하고 부러워하고 있지는 않은가?

 

  남들의 하이라이트와

자신의 비하인드를 비교하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기보다는,

 

  자신만의 하이라트를 향해 달려가는

멋진 젊은이들이 되길 바란다.

 

 

- "오늘 힘들고 내일 더 고통스러우면

모레는 아름다운 성과를 거둘 수 있다."

< 알리바바 Alibaba Group 창업자 마윈 >

 

 

- 승부가 나기 힘든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전략적 식견이 필요하다.

 

  즉, 상대의 취약점을 노려야 한다.

 

  취약점이 안 보이면

취약점을 만드는 창의적인 열정이

있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의외의 성공적인

결과를 얻을 수가 있다.

 

 

- 1919년 04월 11일

상하이에서 출범한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를 정했고,

 

2) 같은 해 9월에는 대통령제를 택했으며

 

3) 1940년 12월 안익태가 작곡한

애국가를 국가로 채택했고

 

4) 1942년 6월 규격이나 모양이

정형화되지 않았던 한민족의 국기

태극기를 법제화했다.

 

 

- 잘 먹고 잘 사는 사람을 일러

'오복 ( 五福 )을 타고났다'며

부러워한다.

 

  오복은

1) 수 ( 壽 오래 사는 것 )

 

2) 부 ( 富 부자 )

 

3) 강녕

( 康寧 건강하고 마음이 편안함 )

 

4) 유호덕

( 攸好德 도덕 지키기를 낙으로 삼는 일 )

 

5) 고종명 ( 考終命

제 명대로 살다가 편안하게 죽음 )

 

  봉건시대는 계층 간 차별이 심해

신분에 따라 식사 용어도 달랐다.

 

  임금은 수라를 젓수다.

사대부는 진지를 자시다.

서민은 밥을 먹다.

천민은 끼니를 때운다고 했다.

 

  반찬 가짓수도 제한돼

임금과 왕비만이 12첩 반상을

받을 수 있었고, 사대부는 9가지,

양반은 7가지만 허용됐다.

 

  궁중에선 된장찌개를 토장조치,

깍두기를 송송이라 불러 차별화시켰고,

임금의 점심은 낮것상이라 했다.

 

 

- 어떤 이는 남도의 빛깔을

모가지가 뚝뚝 꺾어져 떨어진

동백꽃 같은 선혈이라고 했다.

 

  또 어떤 이는 바람에 하늘거리는

청보리 색깔이라 했다.

 

  또 어떤 이는 지평선 넘어

이화우 흩뿌리는 황토색이라 했다.

 

  그러나 필자가 느끼는

남도 빛은 눈으로 볼 수 없다.

 

  가슴으로 보고, 귀로 들어야

그 참빛을 볼 수 있다.

 

  육자배기 맛은 신묘하다.

느린 진양조당단에 남녀의 사랑을

노래한 이 가사를 부르면

형언할 수 없는 맛이

온 육신을 휘감아 돈다.

 

  평평하게 길게 뻗는 소리,

굵게 떠는 소리, 흘러내리거나

굴리는 소리 등의 시김새는

사람의 감정을 뒤흔들어 놓는다.

 

  노래 끝을 '---거나 헤~'로 맺을 때는

맥주 거품처럼 흥이 발아한다.

 

- 일본 작가 마쓰다 미쓰히로는

'청소력'이라는 책에서

"당신이 사는 방이, 당신 자신이다.

 

  당신의 마음 상태 그리고

인생까지도 당신의 방이 나타내고 있다.

 

  방이 더러운 사람은

불행한 느낌이 강하고

방이 깨끗한 사람은

행복감이 강하다.'라고 말했다."

 

  어수선한 우리 집을 보니

'내 상태는?'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장병들의 관물대나

생활관은 아주 깨끗하리라 믿는다.

 

 

 

 

 

오늘의 문장

- "남들의 하이라이트와

나의 비하인드 비교하지마."

 

  인간은 누구나 타인과

비교하려는 성향이 있다.

 

  남이 가지고 있는 것을

자기가 얼마나 갖지 못했느냐를

비참해한다.

 

  하지만 남과 비교하면서

더 잘하려고 할 필요가 없다.

 

  자기 자신보다 잘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가난하고 어려웠던 이들의

비하인드 스토리는 까맣게 잊고,

 

  잘 나가고 성공한 이들의 하이라이트만

기억하고 부러워하고 있지는 않은가?

 

  남들의 하이라이트와

자신의 비하인드를 비교하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기보다는

자신만의 하이라이트를 향해 달려가는

멋진 젊은이들이 되길 바란다.

 

 

  저 역시 다른 사람과 제 자신을

자주 비교하곤 합니다.

 

  저보다 더 똑똑한 사람,

돈을 잘 버는 사람,

키가 크며 예쁘고 잘생긴 사람,

 

  화목한 가정에 집안까지 좋은 사람,

모두가 좋아할 만한 성격에

뛰어난 능력까지.

 

  사회가 정한 규정들을 기준으로

진지하게 고민했을 때

'나'보다 잘난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을 수도 있지만,

 

  의외로 찾아보면 참 많아

역시나 인재가 넘쳐나는

대한민국인 것 같습니다.

 

  이렇게 비교하는 습성이나 버릇을

잘 활용하면 꾸준히 발전할 수 있는

엄청난 원동력이 되지만,

 

  자칫 지나치면 열등감에 빠져

패배자가 될 수도 있기에

저는 양날의 검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한때 열등감에

빠져 있었지만, 현재는 부러워하는 걸

하나의 능력, 재능이라 여기고,

 

  나름대로 어제보다 더 발전된 '나',

내일은 더 멋져 있을 '나'를 위해

지금도 노력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같이 하면 어떨까요.

 

  그 전에 노력하는 사람들이

피해보지 않고, 그 노력과 시간이

인정받는 세상이 되어야 겠지만요.

 

[ 10년 후 부의 미래는? 제4의 물결 ]

https://1wndlf.tistory.com/64

 

 

 

 

 

 

 

* 인물 소개

- 마윈 马云 ( 馬雲, Mă Yún ) :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인

알리바바의 창업자이다.

 

  1964년 09월 10일 중국 저장성

항저우시에서 태어났다.

 

  그는 영어를 배우고 싶다는

열망이 강해 매일 아침 자전거를 타고

호텔에 가서 외국인들과 영어로

대화를 나누곤 했다.

 

  그런 노력 덕분에 수준급 실력의

영어 실력을 갖췄으나, 수학은

번번이 그의 발목을 잡았고,

 

  그 수학 때문에 중학교 입학 시험,

대학 입시에서 각각 3번이나 낙방한

이력이 있으며,

 

  이후 항저우 사범대학에 결원이 생겨

운 좋게 입학할 수 있었다.

 

  그는 대학교에서 학생회 주석,

항저우 학생연맹 주석으로 활동했는데,

 

  무명 대학 출신이 주변 명문대

학생들을 제치고 학생연맹 주석을

맡는 경우가 매우 드물었기 때문에

항저우 사범대학 후배들에게는 전설로 남았다.

 

  재학 중에도 더 좋은 환경에서

공부하고 싶다는 욕심 때문에

미국 하버드 대학교에도 10번이나

지원했으나 아쉽게도 계속 실패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는

1988년부터 항저우 전자과학기술대학교

영어 강사로 일했다.

 

  그의 강의는 매우 재미있어

마치 공연을 보는 듯한 기분을

들게 해주었고,

 

  기초가 약한 학생도

 영어에 흥미를 느끼게 해주었으며,

 

  매우 재미있어 타 강의 학생들도

보러 올 정도였다고 한다.

 

  밤에는 야간대학에서도

영어를 가르쳤는데, 이때 무역 업계

사람들과 친분을 쌓았다.

 

  운명의 여신은 그의 편이었던건지,

알리바바 창립 멤버 18명 일부는

마윈에게 강의를 들었던

학생이었다고 한다.

 

  1992년 마윈은 교직 생활을

하면서도 '하이보'라는 통역 회사에서

기업 경영을 시작했고,

창업을 위해 교직을 그만뒀다.

 

  그러다 1995년 미국 여행을 하던 도중

'맥주'라는 단어를 인터넷에서

검색해봤는데, 다른 나라 자료들은

볼 수 있었으나 중국과 관련된

자료는 하나도 찾을 수 없었다고 한다.

 

  이 일로 그는 인터넷이

세상을 바꿀거라는 확신을 갖고

같은 해 중국 최초의 인터넷 기업인

'차이나옐로우페이지'를 세웠다.

 

  하지만 마윈은 시대를 앞서나갔고,

외국 기업들에게도 경쟁이 되지 않았으며,

 

  1996년 03월 항저우전신과 합병했지만

자본과 권력에서 밀려 사퇴하게 된다.

 

  그럼에도 그는 좌절하지 않고

1997년 중국 대외경제무역부에서

인터넷 네트워크 업무를 담당했는데,

 

  이는 온라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중국 최초의 정부부서였다.

 

  그들은 베이징에

중국 국제전자상거래센터를 세워

마윈에게 조직관리를 맡겼으나,

 

  마윈은 경영에 관한 규제와 간섭이

너무 심하다고 생각했으며,

지분과 급여도 매우 적어고,

 

  무엇보다 마윈과 친구들의 업적이

대외경제무역 간부들의 이름으로

세상에 발표되어 마윈의 공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결과적으로 여러 면에서

실패에 가까웠지만 마윈과

창립 멤버들은 이때의 경험으로

알리바바를 구상하게 된다.

 

 

  그렇게 1999년 한화 8,800만 원

상당의 자본금으로 중국 제조업체와

국외 구매자들을 위한 B2B

알리바바를 설립했다.

 

  '알리바바'라는 사명을 선택한 이유는

거의 모든 국가 사람들이 알리바바를

알고 있고, < 천일야화 >에 묘사된

알리바바의 착한 성품이 브랜드 이미지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실 조그만 캐나다 기업이

알라바바닷컴 도메인을 먼저

사용하고 있었기에 1만 달러에

소유권을 구매했는데,

 

  현대에는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지만

당시에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고 전해진다.

 

  마윈과 18명의 멤버들은 99년 03월,

하루 17시간 씩 일해 홈페이지를

완성했는데... 1999년 7월에는

빚을 내가면서 월급을 줘야 했다.

 

  그런데 마윈은 투자를 지원받을 때

알리바바가 지나치게 저평가되었다는

이유로 83번이나 투자를 거절했고,

 

  액수가 적음에도 그 중 유일하게

미국 유명 기업이라는 이유로

골드만삭스로부터 500만 달러를

투자받는 데 동의한다.

 

  1년 뒤인 2000년 일본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으로부터 6분 만에

투자 유치를 받아 성장 동력을 확보한 뒤,

( 손정의 회장은 3천 만 달러 투자를

제안했지만 마윈은 이를 거절하고

2천 만 달러를 받았으며, 이 2천 만 달러는

3000배의 수익률을 거둔다. )

 

  2001년 손익분기점을 넘겼고,

2003년 전자상거래 사이트 타오바오,

2004년 온라인 결제 시스템 알리페이,

2005년 야후 차이나 경영권 인수,

2006년 수수료 무료를 내세워

          경쟁자 eBay 퇴출 성공,

2007년 홍콩 주식 상장,

2008년 온라인 쇼핑 사이트 T몰 등을

연이어 성공시켰다.

 

  놀라운 성장가도를 달린 덕분에

2014년 알리바바는 드디어 미국에서

상장에 성공하는 쾌거를 이뤘고,

 

  아마존 / 구글 / 페이스북 등과

함께 세계를 대표하는 글로벌 IT

기업으로 자리잡았다.

 

  마윈은 '중국의 빌 게이츠',

'21세기 가장 주목받는 경영자'로 꼽혔으며,

 

  미국 경제지

< 포춘 Fortune >이 선정한

'가장 위대한 지도자 50인' 중

2위에 올르는 기염을 토했다.

 

  그리고 55살, 자신의 생일이자

알리바바그룹 창립 20주년이었던

2019년 09월 10일 경영에서 물러나

교육 자선사업에 매진하겠다고 밝혔다.

 

  실제로 마윈은 2017년 02월 알리바바

호주 / 뉴질랜드 지사를 설립하고자

호주를 방문했는데,

 

  호주 뉴캐슬 대학교에

2천 6백만 호주 달러 장학금을 기부,

마 - 몰리 재단을 설립한다.

 

  1985년 호주 뉴캐슬에 거주하던

켄 몰리씨의 초청으로 호주를 방문해

한 달 간 뉴캐슬에 머물렀는데,

이 때의 경험이 지금의 자신을

만들었다고 마윈을 고백했다.

 

  또한 이미 2018년 09월 08일

은퇴와 관련된 외신 보도가 나왔는데,

 

  그는 평소의 좌우명을

"50대에는 후배들을 가르치기 위해

이를 실천코자 교육에 힘을 쏟겠다."

라고 밝혔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겠지만

그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날 때

알리바바 그룹 소유 빅데이터를

정부와 공유하라는 방침 때문에

상당한 마찰이 있었기에,

 

 중국 정부로부터 사퇴 압박을

받은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쏟아졌지만,

 

  그는 "은퇴는 내가 10여 년 전부터

준비하고 자발적으로 내린 결정이다.

중국 정부 관계자는 오히려 나에게

미쳤냐면서 건강 상의 문제로

사퇴하는 거냐고 끊임 없이 물어봤다."

라고 대답해 정치와는 관련 없다고

말하며 정부 개입설을 부인했다.

 

  추가적으로 그는 태극권 애호가로

알려졌는데, 기업 경영에도 태극권의

원리를 활용할 정도였으며,

 

  2017년 이연결 감독의

< 공수도 >라는 태극권 영화의

주연으로 출연한 경력도 있다.

 

[ 성공하는 사람의 특징 ]

https://1wndlf.tistory.com/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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