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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리원의 서재

나폴레옹 명언과 그의 생애 Napoleon Bonaparte

by ghdzbql 2021. 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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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itempage3.auction.co.kr/DetailView.aspx?itemno=B510253865

[ 경제학 콘서트와 작가 팀 하포트 ]

http://https://1wndlf.tistory.com/40

 

 

 

경제학 콘서트1이 준 깨달음

경제학 콘서트 - 팀 하포드

Tim Harford / 웅진출판사

 

- 만약 물건을 싸게 사고 싶다면

싼 가게를 찾으려 하지 말고

쇼핑을 싸게 하라.

 

  비슷한 물건은 대게 가격도 비슷하다.

 

  값비싼 쇼핑을 하게 되는 이유는

'나쁜 가격'을 제시하는 가게에서

쇼핑을 했기 때문이라기 보다

 

  높은 마진을 붙인 물건들을

무관심하게 고른 결과다.

 

- 우리가 어디로 가고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새로운

대안들을 더 많이 가질 수 있다면,

 

  이는 유익하고

의미 있는 일이 되리라는 사실을

우리는 확실히 알고 있다.

 

- "무능력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을

음모로 생각하지 마라."

<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Napoleon Bonaparte >

 

오늘의 문장

- "무능력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을

음모로 생각하지 마라."

<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Napoleon Bonaparte >

 

 

  경제학 콘서트라는 책도

알지 못했던 경제의 비하인드들을

참 감탄하면서 재미있게 읽었지만,

 

  위의 한 문장은 특히나

저의 뒤통수를 후려갈겼습니다.

 

  우리는 흔히 자신에게 일어난 불운을

남 탓, 환경 탓, 부모 탓,

나라 탓을 할 때가 있습니다.

 

  심지어 평소에는 믿지도 않던

신까지 동원해 '이번 일만 잘 되면

제가 진실되게 믿겠습니다.'라고

거짓말을 서슴 없이 내뱉기도 합니다.

 

  무능력을 인정하고

진짜 능력을 키워 발휘하려

노력하는 게 더 빠르고

스스로에게도 훨씬 유익하겠지요.

출처 :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2096222

[ 손자병법의 역사와 손무의 생애 ]

https://1wndlf.tistory.com/39

 

 

 

* 인물 소개

<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 1769.08.15 ~ 1821.05.05 ) >

 

  지중해 코르시카섬 아작시오에서

Corsica I. Ajaccio 태어난 그의 본명은

'나폴레오네 부오나파르테'였는데

이후 프랑스식으로 바꿔서

현재 불리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1779년 아버지를 따라 프랑스로 건너갔고,

1784년 파리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해

포병 소위로 부임한다.

 

  이후 1793년 툴롱에서

천재적인 전략으로 영국군을 몰아내

무기력했던 프랑스 혁명군의 영웅이 됐고,

 

  1795년 프랑스 국민공회에 반대하는

반란을 진압해 정치권력에

가까이 다가가게 되는 등

 

  12년 동안 크고 작은 사건들

거친 뒤 1796년 바라스의 정부

( 情婦 )이자 사교계의 꽃이라 불리던

조제핀과 결혼했다.

( Josephine de Beauharnais )

 

  그리고 총재정부로부터 이탈리아 원정

군사령관으로 임명되어 이탈리아에서

오스트리아군을 격파했고,

 

  이탈리아 각지에는 프랑스 혁명의

이상을 도입한 인민공화국을 건설해

프랑스에서도 명성을 높였다.

 

  이 순간 나폴레옹은 회고했다.

"그 순간에 나는 내가 어떤 인물이

될지 예측했다. 내가 하늘에 올라가기라도

하듯이 이 땅덩이가 벌써 발 밑에서

달아나는 것 같았다."

 

  1798년 병력을 이끌고 이집트 원정을

떠나 알렉산드리아를 차지했고,

 

  1799년 11월 9일

군대를 동원해 혁명 이후 위태롭던

집정부를 무너뜨리고 제1통령이 됨과

동시에 군사독재를 시작했다.

 

  이날 프랑스 국민들은

"공화국 만세! 나폴레옹 만세!로

화답했다고 한다.

 

  그는 보나파르티즘 (  Bonapartism )

이라는 정치방식을 확립해 국정정비,

법전편찬을 했고,

 

  1800년 알프스를 넘어

이탈리아 북부 마렝고 ( Marengo )에서

전승을 거두었다.

 

  1802년 영국과 아미앵화약 체결,

                     Treaty of Amiens

1804년 인민투표로 황제에 즉위해

제1제정을 폈다.

->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 1세 탄생

 

  나폴레옹은 영국을 최대의 적으로

간주해 상륙작전을 계획했으나

1805년 프랑스 함대는 트라팔가르 해전에서

H.넬슨이 이끄는 영국 해군에 격파되었다.

 

  하지만 같은 해 12월

아우스터리츠 전투에서

( Battle of Austerlitz, 1805.12.02 )

오스트리아 / 러시아군을 꺾은 뒤로,

전유럽을 제압하는 위용을 떨쳤다.

 

  조제핀과 이혼하고 다음 해인

1810년 오스트리아 황녀

마리 루이즈와 재혼하기도 했으나,

( Marie-Lousie )

 

  1812년 러시아 원정에서

실패한 뒤로 그의 운세도 기울어

1814년 영국 / 러시아 / 프러시아 /

오스트리아 군에게 파리를 점령당해

엘바섬으로 유배된다. ( Elba I. )

 

  1815년 3월

다시 파리로 돌아와 황제에 즉위했지만,

 

  6월 워털루 전투에서 패해

( Battle of Waterloo, 1815.06 )

영국에 항복함으로써 다시

세인트 헬레나섬에 유배되었고,

( Saint Helena I. )

 

  자신의 아들인 나폴레옹 2세에게

역사를 깊게 성찰하고 공부할 것을

당부했으며, 자신처럼 살지 말고

평화롭게 유럽을 만들라고 조언한 뒤

 

  1821년 5월 5일 새벽 5시

유배지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비록 그의 말로는 비참했지만

오늘 날 프랑스의 교육 / 종교 / 문화

/ 법률의 초석을 남겼으며,

 

  행정체제 개편과 시민개혁을 이끈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실제로 나폴레옹에 대한 책만 해도

60만 종이 넘는다는 사실만 보아도

그가 프랑스와 유럽에 미친 영향력이

대단했다는 걸 알 수 있다.

 

  또한 프랑스의 역사학자이자

소설가인 조르주 보르도노브는

나폴레옹의 법전을 두고

 

  "이 법전은 출생, 결혼, 이혼,

분배, 증여, 상속, 사망과 같은 개인과

가족에 관한 모든 사항을 다루고 있다.

 

  법 앞에 평등하고, 양심의 자유와

국가의 비종교화를 이루었다는 면에서

이 법전은 가히 혁명적이다.

 

  또한 소유권에 대단히

큰 중요성을 부여했다는 점에서

부르주아적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가족 내 위계질서를

세워 남편의 권위를 아내의 상위에,

아버지를 자식의 상위에 둔 점에서는

나폴레옹적이다.

 

  주지하다시피 이 민사법은

그 동안 약각 개정되기는 했지만

오늘날까지도 통용되고 있다."라고 평했다.

 

[ 전쟁과 전략 전술의 묘미 ]

https://1wndlf.tistory.com/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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