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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리원의 서재

정신분석 창시자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책 스냅 리뷰 Sigmund Freud

by ghdzbql 2021. 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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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s://en.wikipedia.org/wiki/Sigmund_Freud

[ < 스냅 > 미래를 예측하는 힘 ]

https://1wndlf.tistory.com/76

 

 

 

 

- 개가 생고기를 먹어치우듯이

게걸스럽게 정치와 관련된

새로운 정보들을 먹어치우고 있으리라.

 

 

- 사람들은 이런 주제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에도 전혀 다르게 춤을 춘다.

 

  크게 힘들이지 않고

무도장을 빙글빙글 도는 모습이

훈련받은 전문가 같은 인상을 주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회전할 때마다 서로의 발을 밟으면서

춤을 엉망으로 만드는 이들도 있다.

 

  이런 대화를 보고

부부관계가 성공적으로 지속될지,

실패할지 예측하는 것이 가능할까?

 

 

- "인간은 결코

비밀을 간직하지 못한다.

 

  입술이 침묵할지라도

손가락 끝이 대신 말한다."

 

 < 오스트리아의 신경과 의사이자

정신분석의 창시자 지그문트 프로이트

Sigmund Freud >

 

 

- "리더십에서 가장 힘든 것 중의 하나는

그대로의 내가 아닌 타인의 시각과

입장에서 나를 바라보는 것이다."

 

< 미국의 저술가 애드워드 플럼

Edward Homcomb Plumb >

 

 

- 한 권의 책이 다른 어떤 공간보다도

많은 공간을 제공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 말이다.

 

오늘의 문장

- "인간은 결코

비밀을 간직하지 못한다.

 

  입술이 침묵할지라도

손가락 끝이 대신 말한다."

 

 < 오스트리아의 신경과 의사이자

정신분석의 창시자 지그문트 프로이트

Sigmund Freud >

 

 

  프로이트의 이 말이

저는 참 무섭게 와 닿았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비밀을 때때로

믿을만한 사람에게 털어놓는데

그 행동이 불러오는 결과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참 다양하니까요.

 

  확실한 건 우리 주변에는

입이 가벼운 사람들이 분명 있고,

 

  내 비밀을 아는 사람이 많을수록

어디선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입에서 입으로 구전되며,

 

  심지어 좋은 방향이든 아니든

와전되고 있을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진정한 친구 한 두 명만 있어도

성공한 인생이라는 말이

때로는 씁씁하게 다가오기도 하네요.

 

[ 자신감 향상시키는 방법 ]

https://1wndlf.tistory.com/125

 

 

 

* 인물 설명

- 지그문트 프로이트 Sigmund Freud

          ( 1856.05.06 ~ 1939.09.23 ) :

 

  유대인 프로이트는 현 체코 지역인

프라이베르크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아말리에 ( Amalie )와

세 번째 결혼에서 프로이트를 낳았고,

그는 독일의 중등교육기관인 김나지움

( Gymnasium )에서 7년 내내

최우수 학생을 차지할만큼 총명했다.

 

  프로이트는 빈 대학 의학부에

입학해 에른스트 브뤼케 실험실에서

신경해부학 ( Neuroanatomy )을 공부했고,

뇌의 해부학적 구조를 연구했다.

 

  특이하게도 빈 의과대학에 입학한

1873년 지그문트는 본래 이름이었던

지기스문트 ( Sigismund )에서

지그문트 ( Sigmund )로 바꾼다.

 

  1882년에는 훗날 아내가 되는

마르타 베르나이스와 약혼하고,

안정된 생활을 영위코자 연구직 대신

빈 종합병원으로 들어간다.

 

  빠른 성공을 원했던 지그문트는

당시 각광받던 새로운 마취제 성분인

코카인의 효력을 연구하는데,

 

  그는 코카인의 중독성을 과소평가했고,

그는 평생 후회하며 이 일을 인생의

가장 큰 실책으로 꼽는다.

 

  1885년에는 프랑스 파리에서

저명한 의사 장 마르탱 샤르코

( Jean Martin Charcot )의 강의를 통해

최면술을 이용한 여성의 히스테리 발작증

치료 효과를 보게 되었고,

 

  이후 그는 반세기 동안 인생의 목표가 될

인간의 심신 관계에 관한 문제를 파고들게 된다.

 

  1889년 프랑스 낭시에서

베르넴과 레보 밑에서 최면술을 본 뒤,

 

  인간의 마음에는 본인이 의식하지 못하는

무의식이 존재한다는 걸 믿게 되었다.

 

  특히 프로이트의 스승

요제프 브로이어 ( Josef Breuer )는

프로이트보다 앞서 여성 히스테리 환자에게

최면술을 걸어 심적 외상을 상기시키면

치유된다는 사실을 발견했고,

 

  프로이트는 브로이어와 공동으로

치유법을 연구해, 1893년 카타르시스

( Katharsis )법을 확립했다.

 

  하지만 성 ( 性 )을 히스테리의

중요한 원인으로 지목한 프로이트와

달리 브로이어는 그렇지 않다고 보았고,

결국 두 사람은 불화 끝에 결별한다.

 

  이후 프로이트는 이비인후과 의사인

빌헬름 플리스 ( Wilhelm Fliess )의 도움으로

'과학적 심리학 이론'을  구상하게 된다.

 

  그리고 카타르시스 치유법의

결함을 보완하기 위해 최면술 대신

자유연상법을 사용했고,

 

  1896년 이 치료법에 '정신분석'

이라는 이름을 붙였으며,

이것이 바로 정신분석학의 선구가 되었다.

 

  1900년 대에도 그는 꿈 / 착각 /

말실수 등과 같은 정상 심리에도

연구를 확대해 심층심리학을 확립했고,

 

  학자들과 '수요 심리학회'

'국제정신분석학회'를 창립하기도 했다.

(수요 심리학회->국제정신분석학회로 개명 )

 

  1909년에는 클라크대학 20주년 기념식에서

강연해 미국에 정신분석을 보급시켰다.

 

  이 과정에서 그는

"인간의 행동은 합리적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마음 깊숙한 곳에

숨어 있는 무의식이 그 행동과

정서를 규정한다."라고 단언했다.

 

  1933년 독일에서 히틀러가 권력을

장학함과 동시에 유대인인 프로이트의

저서들도 공개적으로 불태워졌고,

 

  1938년에는 오스트리아가 독일에

합병되자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나치에 쫓겨 런던으로 망명했으며,

 

  다음 해, 자신을 세 번이나

괴롭힌 구강암을 극복내내지 못해

망명지인 런던에서 사망하고 만다.

 

  그는 평상시 자신이 좋아했던

그리스 항아리에 묻혔다.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20세기

사상가로 엄청난 영향을 끼친

인물로 평가되고 있으며,

 

  심리학 / 정신의학 / 사회학 /

사회심리학 / 문화인류학 / 교육학 /

범죄학 / 문예비평 등에서도

자신의 이름을 남겼다.

 

  그 중에서도 그의 가장 큰 업적은

'무의식의 발견'이라 꼽힌다.

 

  프로이트는 히스테리 연구로

심리적 원인이 신체적 질환으로

나타날 수 있음을 알아냈다.

 

  무의식의 작동 방식은 단순히

정신질활 환자들 뿐만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적용된다는 점을 알아냈고,

 

  치료 과정에서 최면술 /

압박술 / 자유연상 등의 방법들을

시도한 덕분에

'에고 ( 자아 ) - 이드 ( 그것 ) -

슈퍼에고 ( 초자아 )' 3박자 도식을 도출한다.

 

  나아가 그는 성적 충동 ( 리비도 )이

유아부터 성인에 이르기까지 모든 인간의

중요한 본능 가운데 하나라고 주장했는데,

 

  프로이트의 이론은 만사를 성 ( 性 )으로

설명하려 한다는 비난을 받기도 한다.

 

  인간의 발달 단계에 따라

구강기 ( 입으로 성적 쾌감을 얻는 시기 ),

항문기 ( 항문으로 성적 쾌감을 얻는 시기 ),

남근기 ( 남성의 성기에 관심을 갖는 시기 )로

구분했고,

 

  남자아이의 경우 어머니에게 성적 욕망을

느끼고 아버지에게 거세 공포를 느낀다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여자아이는 '남근 선망'을 느낀다고 주장해,

프로이트 활동 당시 남성중심주의를

반영한 발언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일각에서는 정신분석을 사이비 과학이라

비판하는 의견도 있다. 프로이트의 이론이

과학적 요구조건을 만족시키지 못하며,

 

  프로이트가 치료한 환자 중에서도

완치 여부가 불확실한 경우가 많아

객관적 평가도 어려웠기 때문이다.

 

  프로이트는 말년에 자신의 이론을 향한

사람들의 시선과 비난을 의식해서인지

아인슈타인에게 다음과 같은 내용의

편지를 남겼다고 한다.

 

  "물리학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감히

선생님의 주장에 대해 가타부타 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

 

  반면 심리학을 모르는 사람조차도

제 주장에 관해서는 가타부타 말이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니 아인슈타인 선생님께서는

정말 복 받으신 분입니다."

 

  주요 저서로는

< 히스테리 연구 ( 1895 ) > /

< 꿈의 해석 ( 1900 ) > /

< 일상생활의 정신병리학 ( 1901 ) > /

< 성욕에 관한 세 편의 에세이 ( 1905) > /

< 토템과 터부 ( 1913 ) > /

< 정신분석강의 ( 1917 ) > /

< 쾌락 원칙을 넘어서 ( 1920 ) > /

< 자아와 이드 ( 1923 ) > /

< 환상의 미래 ( 1927 ) > /

< 문명과 불만 ( 1929 ) > 등이 있다.

 

  프로이트의 막내딸 안나 프로이트

( Anna Freud )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정신분석학자가 되었으며,

 

  그 중에서도 아동 심리학의

권위자로 이름을 떨쳤다.

 

[ 빅터 프랭클 죽음의 수용소에서 후기,

아우슈비츠 수용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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