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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리원의 서재

이케아 창립자 잉바르 캄프라드와 이케아 불편을 팔다 리뷰

by ghdzbql 2021. 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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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백화점그룹-계열사
LG전자-가전렌털
출처 : https://www.pxfuel.com/en/free-photo-eepez

- 경제 생활을 하면서 가지고 있는 에너지를 무언가 건설적인 것을 위해 투입하는 것이 아니라 기껏 경쟁자를 방해하는 데 사용하는 커다란 실수를 하고 만다.

 

 

- 직업은 생계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노동의 기쁨이 없다면 인생의 1/3이 사라지고 만다.

 

 일할 시간에 책상 서럽 속에 넣어 놓고 들어다보는 연애 잡지가 이런 손실을 보충해 줄 수는 없다.

 

 사람의 행복은 목표에 이르는 것에 있지 않다.

 

 행복은 과정에 있다.

 

 모든 사람들은 오늘 이룬 것을 내일 어떻게 더 좋게 만들지를 자기 자신에게 끊임없이 물어야 한다.

 

 할 수 있는 일을 모두 다 했다고 믿는 퇴직연금 수령자는 금세 시들어 버린다.

 

 목표에 도달했다고 믿는 기업은 순식간에 정체에 빠지고 생명력을 잃어버리기 마련이다.

 

 

- 그러나 그것은 통에 담긴 물을 넘치도록 만든 마지막 한 방울이었습니다.

 

 

- 디자인은 그 디자인의 값을 지불할 수 있는 사람뿐 아니라 모든 이들을 위한 일이다.

 

 

- "기본적인 제품 형태는 스칸디나비아 안에서는 '전형적인 이케아'가 되어야 할 것이고, 스칸디나비아 바깥에서는 '전형적인 스웨덴'이 되어야 한다.

 

< 잉그바르 캄프라드 Ingvar Kamprad Ingvar Feodor Kamprad >

 

 

- "우리가 어떤 식으로든 예외를 인정하게 되면, 어느 날인가 회사에는 쉬러 가고 집에서는 일을 하게 될 것이다."

 

< 19C 철강왕 프리드리히 알프레드 크룹 Friedrich Alfred Krupp >

 

 

- "단순함은 덕이다. 아무런 조정이나 규율 없이 움직이는 기업은 없다.

 

 규율은 단순해야만 한다.

 

 규칙이 복잡하면 복잡할수록 그것을 따르기가 어려워진다.

 

 복잡한 규칙은 절뚝거리기 마련이다."

 

< 잉바르 캄프라드 Ingvar Kamprad Ingvar Feodor Kamprad >

 

 

- "나 스스로 호사스럽게 움직이면서 어떻게 나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저렴하게 여행하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리더십의 문제입니다."

 

 < 잉바르 캄프라드 Ingvar Kamprad Ingvar Feodor Kamprad >

 

 

- "이케아의 테플론 층은 행운 또는 흔히 '스웨덴'하면 떠오르는 긍정적인 이미지의 결과가 아니다.

 

 오히려 고단하고 힘들게 일해서 얻어낸 선물이다."

 

오늘의 문장

- "우리가 어떤 식으로든 예외를 인정하게 되면, 어느 날인가 회사에는 쉬러 가고 집에서는 일을 하게 될 것이다."

 

< 19C 철강왕 프리드리히 알프레드 크룹 Friedrich Alfred Krupp >

현대백화점-경영전략

 

 

 

 < 오늘의 문장 >을 선정할 때 어느 것 하나 버릴 것 없는 명문장들이라 참 애를 먹었습니다.

 

 우리는 타인에게 엄격하고 자신에게는 너그러울 때가 많습니다.

 

 즉, 예외를 두는 경우가 많죠.

 

 자신 있게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대단한 삶을 살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겠네요.

 

 실제로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여러 가지 변수들이 발생하고,

 

 그 때문에 예외를 두지 않으면 자칫 융통성이 없는 사람으로 비칠 수도 있습니다.

 

 양쪽에서 중심을 잘 잡아 회사에서는 열심히 일하고,

 

 집에서는 충분히 휴식을 취해 내일을 준비하다 보면 잦은 '예외'에서 멀어지지 않을까요?

 

* 인물 소개

- 이케아 IKEA 창업자 잉바르 캄프라드 Ingvar Kamprad Ingvar Feodor Kamprad :

 

 1926년 03월 30일에 태어나 비교적 최근인 2018년 01월 27일에 세상을 떠난 스웨덴의 대표 기업인이다.

 

 잉그바르 캄프라드는 스웨덴 아군나리드 ( Agunnaryd )의 엘름타리드 ( Elmtaryd )라는 농장에서 태어났다.

  

 그는 5살 때부터 사업 수완을 선보였는데, 성냥 100갑을 고향에서 팔아 마진을 남겼고,

 

 12살 때는 우유 배달 트럭을 타고 다니며 펜과 지갑 등을 팔았고,

 

 14살 때는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직접 잡은 생선, 크리스마스 카드, 시계, 펜 등을 팔았다.

 

 위와 같은 배경에는 가난한 집안 환경에 의한 탓이 컸다.

 

 그렇게 한 푼, 두 푼 모은 돈으로 1943년 이케아를 설립했는데, 처음에는 가구가 아닌 양말, 넥타이, 액자, 시계 등 생활용품 위주의 라인업을 구성했다.

 

 그러다가 1948년부터 수공예로 제작한 가구 판매를 고안했고, 1951년에 본격적으로 가구 전문 생산 및 판매 업체로 발돋움하게 된다.

 

 1953년 알름홀트 ( Almhult ) 마을에서 오늘날 이케아 매장 컨셉과 유사한 쇼룸 개념의 전시 매장을 열었고, 이곳이 이케아의 첫 매장으로서 첫 시작을 알렸다.

 

 애초에 자금이 부족한 신혼부부들이 구매하기 좋은 저렴하고 튼튼한 가구 브랜드를 지향했던 이케아인 만큼 값싸지만 훌륭한 디자인과 실용성을 가진 가구를 제공한다는 비전으로 전 세계 여러 나라로 사업을 확장해 나갔다.

 

 세계에서 200번 째 안에 드는 부호이지만 그는 출장을 다닐 때 항상 이코노미 클래스에만 탑승했고, 의자도 무려 30년 이상 구매나 교체 없이 사용해 검소한 생활 태도로 유명했다.

 

 특이한 점은 앞선 포스팅에서 언급했지만 잉그바르 캄프라드는 난독증 환자였고, 제품 코드를 읽는 데 어려움을 느껴 이케아 제품에 특정 장소나 사람 이름을 붙여서 사품을 분류했는데, 이러한 시도는 소비자들에게 친근함을 무기로 상품들을 쉽게 인지할 수 있는 장점이 되었다.

 

 또한 잉바르 캄프라드는 두 번 결혼해 3명의 아들을 낳고, 1 명의 딸을 입양했으며, 위와 같은 가족 관계와 구성 역시 그에게 가구를 구상하는 데 있어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이처럼 가구 업계에서 혁신과 놀라운 사업 능력을 보여준 캄프라드는 1988년 이후부터 경영에 관여하지 않고 고문 직택을 맡다가, 2013년 이케아 이사회에서 사임했다.

 

 하지만 그에 관한 논란도 존재한다.

 

 잉바르 캄프라드는 자서전에서 10대 떄 스웨덴 나치 운동에 가담한 사실을 고백했다.

 

 그런데 스웨덴 작가 아스브링크 엘리자베스 ( Asbrink Elisabeth )는 2011년 발간한 책에서 그가 단순히 나치의 영향을 받은 수준을 넘어 그들에게 직접적으로 가담했으며, 세계 대전이 끝난 뒤에도 나치 인사들의 동조자였다고 고발해 논란이 일었다.

 

 왜냐하면 캄프라드는 나치 가담이 그저 어렸을 적의 실수였던 것처럼 해명했는데, 아스브링크 엘리자베스는

그가 나치 모임인 SSS ( Sweden's Socilaist Union )에서 신입 당원을 모집했으며,

 

 1950년 치룬 자신의 결혼식에 나치로 분류되는 극우주의자 엥그달 ( Per Engdahl )을 초청한 것에서 그치지 않고, 2010년 진행한 인터뷰에서  엥그달을 위대한 사람이라고 표현했다고 한다.

 

 정확한 사실은 2018년 그의 사망과 함께 영영 알 수 없게 되었지만, 개인적으로는 그가 나치와 관계가 깊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생겼다.

책-이케아 불편을 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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